내가 남자로 태어났더라면! - 82년생 김지영 & 맨박스
[독서광(진짜?!)인 MC정이 여러분들께 책을 추천하면서
독후감을 소개하는 코너!]
(경고) 쓸떼 없이 길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아 이건 뭐지..? 라고 생각이 드신다면 그 순간 뒤로 가기 클릭...(또르르...)
* 두 권의 책을 함께 읽으시는 것을 강. 력. 하. 게. 추천드립니다.
“지금 내 인생에서 성별만 바뀌면 내 삶은 어땠을까? 나도 남자로 태어나고 싶다, 다음 생에는 남자로 태어났으면 좋겠어!”
슬프게도 나는 일을 시작하면서 저 말을 자주 내뱉는다(아주 생각 없이, 어떤 때는 매우 진지하게). 사실 난 내 성별이 ‘여’라는 점에 별 불만이 없었다. 학창시절에는 남자 아이들보다 운동도 잘 했고, 체력도 좋았으며, 공부도 열심히 했다. 그리고 말싸움도 잘했다. 내가 초등학교 4학년일 당시에는 YS가 대통령이었는데, 토론 시간에 대통령 역할을 맡은 남자아이를 상대로 신랄하게 비판하고 말 한 마디도 못 하게 해서 그 아이를 울리기도 하였다. 그렇다. 난 여느 여자 아이들보다 소위 ‘드세고 불의를 보면 못 참는’ 사내아이 같았다. 하지만 ‘운 좋게도’ 나에게 “계집애”라고 칭하면서 혼내거나 비판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렇게 학창시절을 보냈다. 그랬던 내가 왜 저런 말을 하게 된 것일까.
가만히 생각해보니, 내가 저런 말을 자주 내뱉었던 것은 첫째로 사회 전반적인 시스템이 남성에게 우월하게 작용하도록 설계되어 있다는 점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다는 전제 아래, 둘째로 그와 같은 시스템을 개선할 필요성이 있다고 느끼지만 한편으로는 나도 남성우월주의를 누렸다면 어땠을까 하는 편협한 생각에서 비롯되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던 참에 82년생 김지영과 맨박스를 함께 읽은 것은 너무나도 시의 적절했다. 82년생 김지영 씨는 나에게 절박한 신호를 보내는 듯하였고, 토니 포터는 그 신호가 어디서부터 비롯되었는지, 그 신호에 대응하는 방법을 알려주고 있었다.
우리나라에서 82년도에 태어난 여성들 중에 ‘김지영’이라는 이름을 가진 여성이 가장 많다는 사실로부터 82년생 김지영의 이야기가 시작된다. 주인공은 우리 사회에서 너무나도 평범하고 보편적이다 못해 한없이 서글픈 여성의 삶을 살아간다.
주인공은 모르는 남성으로부터 스토킹을 당했고, 대학 선배들로부터 용납할 수 없는 성희롱을 겪기도 했으며, 같이 입사한 남자 동기들과는 달리 이해할 수 없는 이유로 주요업무에 투입되지도 못했고, 워킹맘을 포기했다는 이유로 소위 맘충 소리를 들었으며, 제때 아이를 갖지 않는다는 이유로 질타를 받기도 했다. 한편, 김지영 씨의 어머니는 주인공의 꿈을 존중하고 희생을 강요하지 않는 부모였고, 그 주변에는 여성에 대한 부당한 대우에 맞서 목소리를 내거나 행동하는 여성들도 있었다. 명백한 것은, 여성이 모자라고 못나기 때문에 저런 부당한 일을 겪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이에 대해 토니 포터는 여성이 남성의 소유물이며 성적 대상이고 열등한 존재라는 남성들의 인식과 사회 분위기로부터 비롯된다고 설명한다. 그리고 소위 ‘착한’ 남성들의 침묵이 이 상황을 초래한 것이라고 말한다. 82년생 김지영의 이야기를 통해 알 수 있듯이, 주인공이 성별로 인해 부당하고 폭력적인 상황에 직면할 때 이에 맞서는 사람은 남성이 아니라 여성이었다.
더욱 자세히 들어가자면, 어느 범죄가 발생한 경우 그 안에는 가해자와 피해자가 반드시 공존한다. 가해자에게는 그 행위를 한 이유 내지 동기를 묻고, 그 행동은 용납될 수 없다는 근거를 법률로 들며 처벌하며, 피해자에게는 형사보상제도를 통해 그에 상응한 보상을 한다. 어찌 보면 너무나도 당연한 이 과정이, 유독 성범죄와 가정폭력범죄에서는 반대로 작용하는 경우가 너무나도 많다. 오히려 피해자에게 ‘왜 그 시간에 그 장소에 있었는지, 왜 그런 옷을 입었는지, 그 때 기분이 어땠는지, 가해자를 용서할 생각은 없는지, 가해자가 사회에서 매장당하게 놔 둘 것인지, 왜 계속 맞으면서 같이 사는지, 좋아서 그런 건 아닌지, 당신이 맞을 만한 행동을 한 것은 없는지’를 묻기도 한다. 토니 포터는 이 점을 지적하면서 남성들의 행동 변화를 촉구한다.
남성이 행동하지 않으면 맨박스는 절대 깨질 수 없다는 말에 전적으로 동감한다. 이미 기울어진 운동장을 바로 세운다고 해서 그들이 잃는 것은 없다. 옳지 못한 것을 바로 잡는 것이 그들에게 해롭다고 할 수도 없다.
최근 주요 관직에 여성 후보자를 임명하고, 그들을 검증함에 있어서 여성이라는 점을 드러내고 지적하지 않는 것을 보니, 다행히도 우리 사회는 좋은 방향으로 바뀌고 있는 듯하다. 하지만 82년생 김지영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주인공과 같은 평범한 여성들은 여전히 절망하고, 절규하고 있다. 사회 내 유리천장은 높은 곳에 있든 낮은 곳에 있든 존재하고, 높은 곳의 유리천장이 깨졌다고 해서 그보다 낮은 곳의 유리천장이 자동으로 깨지지 않는다.
"우리 사회는 저 낮은 곳에서부터 시작되는 수많은 김지영의 신호를 더 이상 무시해서는 안 될 것이다."
'엠씨정의 인생실전 > 책 읽는 보통 여성' 카테고리의 다른 글
[책사랑] 흥부가 과연 약자일까 - 언더도그마 (1) | 2018.06.24 |
---|---|
[책사랑] 그래야만 달라집니다. 그게 반격입니다. - 서른의 반격 (1) | 2018.06.17 |
[책사랑] 아마리는 나에게 말했다 - 스물아홉 생일, 1년 후 죽기로 결심했다 (2) | 2018.06.17 |
[책사랑] 2017 서울국제도서전에 다녀왔습니다! (3) | 2018.05.13 |
[책사랑] 가난은 죄(罪)다 - 힐빌리의 노래 (2) | 2018.05.12 |